“왕따 당한다고 자꾸 졸라서 사줬더니 카톡만, 후회돼요”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은 요즘 '내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사줘도 될까'라는 생각 때문에 고민이 크다. 아이들은 "친구들과의 대화에 낄 수 없다" "소외를 당한다"며 부모에게 고가의 스마트폰을 사달라고 조른다.
학교폭력에 민감한 부모들은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면 어떡하지'라고 걱정하다 결국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쥐여준다.
경향신문은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학교 폭력에 시달릴까 비싸도 할 수 없이 구입
PC 대신 게임·채팅만… 집착 이 정도일 줄 몰라
■ 무용 동영상 본다더니 카톡만
주부 김미정씨(39·가명)는 지난해 초등학교 6학년 딸아이에게 갤럭시S를 사줬다. 무용을 배우는 딸이 "음악도 듣고, 무용안무 동영상을 보며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는 동영상을 보며 무용 연습을 하기는커녕 '카톡 삼매경'에 빠졌다. 최근 김씨는 딸아이가 화면에 집중하고 있을 때 뒤에서 살짝 훔쳐봤다. 딸은 수십명의 남녀 아이들이 들어있는 그룹채팅방(일명 '카톡방')에서 대화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용은 주로 이성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더라, 누구랑 누가 같이 가는 걸 봤다'는 식이었다.
김씨는 이후 딸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다. 딸은 "자겠다"고 말한 뒤에도 자기 방에서 한 시간이 넘도록 스마트폰을 쥐고 채팅을 했다. 김씨는 "채팅방에서 정신없을 정도로 메시지가 오가는 것 자체가 아이를 산만하게 만들고 시간을 뺏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나 "엄마로서 어떻게 딸아이의 생활을 컨트롤해야 할지 몰라 더 걱정스럽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스마트폰을 사준 것이 후회된다고 털어놨다. "처음에는 그저 아이가 필요하다고 하니까 인터넷을 쓰는 용도로 사줬는데 이 정도로 채팅에 집착할 줄 몰랐어요. 제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으니 스마트폰이 어떤 것인 줄 몰랐던 거죠. 처음 사줄 때 이런 문제점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고 다시 뺏을 수도 없으니 지금은 후회만 하고 있어요."
■ 카톡만 써도 5만원 넘는 통신비
초등학교 5학년 딸을 둔 주부 고정환씨(39·가명)는 "아이가 하루종일 스마트폰만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보면 분통이 터진다"고 털어놨다.
고씨는 올해 초 아이에게 2G 휴대폰을 사줄 작정이었다. 늦게까지 학원을 다니는 아이와 통화하는 용도로만 사용하게 할 참이었다.
딸과 함께 대리점을 찾은 고씨는 그러나 아이에게 스마트폰 베가레이서를 사주고 말았다. 대리점 직원이 "구형 휴대폰은 앞으로 없어지기 때문에 요금제에 포함시켜서 할부를 할 수 없고 기계 자체를 구입해야 한다"고 안내했기 때문이다.
계산을 해보니 스마트폰을 사주는 게 훨씬 이익인 것 같아 고씨는 무료로 살 수 있는 베가레이서를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스마트폰을 갖게 된 아이는 전화통화보다는 인터넷 검색과 카카오톡에만 집중했다.
통화는 지급되는 통화량의 5분의 1도 채 사용하지 않았다. 반면 데이터 사용량은 매달 정해진 양보다 넘게 사용했다. 기본요금이 이미 3만4000원인 데다 유료앱까지 추가되면서 매달 5만원 이상씩 통신료가 나왔다.
고씨는 "아이한테 '왜 이렇게 통화는 거의 안 하니'라고 물으니까 '엄마 내가 통화할 일이 뭐가 있어'라고 말해 오히려 말문이 막혔다"고 밝혔다.
■ 컴퓨터·스마트폰 모두 '게임용'
맞벌이 부부인 한재영씨(40·가명)는 지난 4월 초등학교 5학년 아들에게 스마트폰을 사줬다. 한씨는 "우리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이가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딴짓만 할까봐 안 사주는 건데 아이는 우리의 마음을 이해하기는커녕 '왜 다른 집은 사주는데 엄마는 안 사주느냐'며 화를 내 어쩔수 없었다"고 말했다.
출퇴근 시간이 불규칙한 간호사일을 하다보니 아이를 제대로 돌볼 시간이 없는 한씨로서는 아들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막상 스마트폰을 사주고 나니 가족 간의 대화는 더 줄어들었다. 아들은 하루종일 스마트폰을 붙잡고 게임하기에 바빴다.
컴퓨터 게임은 하루 한 시간으로 정해놔서 부모가 조절할 수 있었지만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것까지는 막을 수조차 없었다. 한씨는 최후의 방법으로 학교에 갈 때는 스마트폰을 집에 두고 가도록 했다.
한씨는 "우리는 이제 어쩔 수 없지만 아직 스마트폰을 사주지 않은 부모들은 최대한 스마트폰 구매를 늦췄으면 좋겠다"고 말했다.